목차

1. 단말기기 및 정보통신서비스의 설계 문제

(1) 단말기기 및 S/W의 설계 문제

이는 최종사용자가 건강·연령 등 신체적·정신적 능력 상의 차이나 결함에도 불구하고 정보통신망에 쉽게 접속할 수 있도록 융통성 있고 다양한 단말기기를 설계하는 문제이다.

단말기기는 그것을 사용할 사람들의 범위에 따라, '범용 단말기기'와 '특수 단말기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범용 단말기기는 적어도 의도상으로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단말기기로서, 이 경우에는 말 그대로 '보편적 설계'가 요구된다. 이와 달리 특수 단말기기는 특수한 집단(예컨대,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 언어장애인, 지체장애인 등)의 요구에 맞도록 특별히 설계된 단말기기로서, 이는 '보편적 설계'가 아니라 오히려 '특수적 설계'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범용 단말기기라 하더라도 실제로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아니라 일정한 능력이나 속성을 전제조건으로 요구한다는 점에 있다. 이 경우 해결책은 첫째, '보편적 설계' 표준에 맞도록 범용 단말기기를 재설계하거나, 둘째, 아니면 기존의 단말기기는 그대로 둔 채 추가적으로 특수한 적응기기 및 S/W(specialized adaptive device or software)를 개발함으로써 사용자의 능력에 맞도록 범용 단말기기를 적응시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장애인들에게 통신망에의 접근을 보장해 주기 위해 '보편적 설계'에 의한 해결책보다는 '적응적 해결책'(adaptive solution)이 주로 많이 추구되어져 왔다. 또한 네트워크 환경을 고려함 없이 개별 단말기기 안에서의 독립적 해결방안(stand-alone approach)에 국한하여 논의와 연구가 진행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네트워크환경을 고려한 범용 단말기기의 '보편적 설계' 접근방법이 보다 많이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적어도 정보통신기기의 '보편적 설계'에 관한 표준이 보다 구체화될 때까지는 '적응적 해결책'에 대한 정책적 지원 역시 지속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각각의 단말기기들과 정보통신서비스들에 대하여 '보편적 접근'을 가능케 하는 설계의 표준이 무엇인가가 설정되어 있지 않고는 기기 제조회사나 서비스 제공회사들이 어떤 지침을 따라야 할지 알 수 없을 것이다. 표준화(standardization)는 접근가능한 정보통신 기기 및 서비스의 개발을 위해 핵심적인 요소인 것이다. 정보통신기기 및 서비스의 '접근성 표준'(accessibility standard)을 설정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성능(performance)의 표준화냐 사양(specification)의 표준화냐라는 문제와 강제적(mandatory) 표준화냐 자발적(voluntary) 표준화냐라는 두 가지 문제가 검토되어야 한다. 우선 정보통신기술의 급격한 발전을 고려할 때, 사양의 표준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성능만 표준화하고 세부적 사양은 각 기업의 엔지니어들에게 맡기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다음으로 정보통신산업의 입장에서 보면 장애인을 고려한 기기 및 서비스는 소규모의 틈새시장(niche market)에 불과하며, 따라서 단순히 자유경쟁과 시장기제에만 의존해서는 '보편적 설계'에의 유인이 적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보편적 설계'를 위한 대표자로서의) 장애인과 관련 업계의 의견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 정부에 의해 강제적 표준의 형태로 설정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2) 정보통신 서비스의 설계 문제

이는 최종사용자가 건강·연령 등 신체적·정신적 능력 상의 차이나 결함에도 불구하고 정보통신서비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융통성 있는 서비스를 설계하는 문제이다.

현재 많은 정보통신서비스가 단일양식(single modality) 서비스이며, 일부 다중양식(multi-modality) 서비스의 경우에도 정보표현양식(modality of information)의 선택이 불가능하거나 일부 정보표현양식을 선택한 경우에는 서비스로의 접근이 제한적이다. 따라서 이용자는 그 자신이 인식·제어할 수 있는 정보표현양식이 서비스 자체에서 지원되지 않는 경우, 통신서비스에서 지원하는 정보표현양식을 자신이 인식·제어할 수 있는 양식으로 전환해 주는 기기나 S/W(예컨대 PC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screen reader)를 자신의 단말기기에 부가적으로 설치할 경우에만 정보·통신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디지털 정보의 고속 송수신이 가능해지고, 이에 따라 멀티미디어 데이터(음성·문자·그림·영상정보)의 동시적 다중전송에 기초한 정보통신서비스, 즉 다중양식(multi-modality)의 정보통신 서비스가 주류를 이룰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정보통신 서비스가 단순히 여러 정보표현양식을 포함하는 멀티미디어 서비스로 그쳐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첫째, 모든 정보통신 서비스는 모든 정보표현양식을 포함하는 다중양식의 서비스이어야 하고, 둘째, 이용자가 자신의 상황에 따라 이들 정보표현양식들 중 하나 또는 일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셋째, 이용자가 어떤 정보표현양식을 선택하든 동일한 질과 양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들이 주어질 때, 이용자가 자신의 의사소통능력이나 그가 처한 상황조건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고, 이용자가 값비싼 S/W나 H/W를 개별적으로 구입하지 않아도 되며, 단말기기 자체의 기능도 단순화될 수 있다. 즉 다양한 장애인뿐 아니라 누구나 어떤 조건에서건 쉽게 정보통신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통신중계서비스(telecommunication relay service: TRS)의 고도화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전화시대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정보표현양식 간의 전환서비스가 존재하였다. 즉 청각 및 언어장애자는 teletypewriter(TTY)라는 단말기기를 공중전화망에 접속하여 기간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통신중계서비스에 의해 일반전화사용자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이는 일반전화사용자의 음성정보와 TTY사용자의 문자정보가 중계요원에 의해 상호전환되도록 하는 서비스인데, 미국 장애인법(1990)에서는 기간통신사업자가 의무적으로 통신중계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여 보편적 서비스의 한 부분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본격적인 고도정보사회가 도래하면 디지털 정보통신망을 통해 멀티미디어 데이터(음성·문자·그림·영상정보)가 고속으로 다중전송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컴퓨터 관련 기술(광학문자인식기술, 음성인식기술 등)의 발달에 따라, 이들 서로 다른 표현양식의 정보들을 상호 변환·번역해 주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기간통신사업자의 고성능 컴퓨터에 이러한 기능을 내장할 경우, 고도의 통신중계서비스(TRS) 내지 정보표현양식 전환서비스(예컨대 전자메일, fax, 음성 등 간의 상호전환)가 실시간(real-time)으로 제공될 수 있게 된다.

장차 대부분의 정보통신서비스가 멀티미디어 내용물로 구성될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다양한 정보표현양식들의 상호전환이 가능하도록 중계하는 서비스가 멀티미디어 시대에 있어서의 새로운 기본적 서비스로서 설정될 수 있다. 왜냐하면 고도의 통신중계서비스(TRS)는 단지 청각·언어·시각장애인에만 유용한 특수 서비스가 아니라, 고령자·어린이·일시적 장애인은 물론, 가용한 단말기기나 주변조건 때문에 일부 정보표현양식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일반인을 포함하여 모든 국민이 정보통신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