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보편적 서비스와 정보통신의 복지화

전기통신(telecommunication)은 비교적 초창기부터 복지의 이념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 왔다. 우선 전화기 자체가 청각장애인을 위해 음성정보를 시각적으로 전환해주는 기기를 발명하려는 시도의 부산물이었다. 또한 전화가 발명된지 불과 30여년이 지난 1908년경부터 '보편적 서비스' 이념이 이미 주창되었고, 1934년 미국 연방 통신법에 의해 통신정책의 기본 이념으로서 법제화되기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보편적 서비스'란 지역·소득 등에 관계 없이 모든 국민이 전화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통신정책상의 이념을 의미해 왔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1) 원하는 모든 곳까지 공중전화망을 연결해주고, (2) 기본음성서비스에 대하여 이용구간·이용량 등에 따른 가격차별을 배제하되, 특히 시내통화료를 값싸게 유지하며, (3) 저소득층에 대해 전화기 및 전화서비스의 가격을 보조해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형적으로 '규제하의 독점'에 기초한 '내부상호보조'(cross-subsidization)체제가 필요하게 되었다.

한편, '보편적 서비스'라는 규범적 이념은, 통신산업이 갖고 있는 경제적 특성, 즉 '네트워크 외부효과'(network externality)을 전제로 하여 경제적 효율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즉, 정보통신산업은 수요의 상호의존성과 공급면에서의 규모의 경제 등 수급 양면에서 '네트워크 외부효과'를 갖는 산업이다. 따라서 인구의 대부분을 통신망에 포괄하는 일정 수준까지는 이용자 수가 많을수록 경제적으로 효율적이게 된다. 저소득층에 전화기 가격 및 전화서비스 이용요금을 감면해주고, 지역·이용량·이용구간 등에 따른 가격차별을 억제함으로서 이용자를 확대하는 것은 복지의 향상뿐 아니라 통신망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경제합리성을 그 근저에 깔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정보통신기술의 급격한 발달에 따라 다양한 단말기기(전화기, 이동전화기, PC, TV, fax, kiosk 등)와 디지털 정보통신망(전화선, ISDN, 유선방송망, 무선통신망, 인터네트, 광섬유망, 위성통신망 등)을 기반으로 하여, 복합적이고 다양한 정보 및 통신서비스(음성·문자·화상·영상정보로 구성된 쌍방향의 의사소통·정보검색·직접연계 서비스)가 가능하게 되었다. 다가오고 있는 고도 정보사회에서는 사회적 삶에 있어서 정보통신에의 접근(access)이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 아니라 정보획득의 수단이며, 나아가 직접적 행위(전자거래, 원격진료, 원격교육, 원격근무 등)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정보통신에의 접근에서 배제되었을 때 초래되는 결과는 단순히 전화를 이용한 전기통신에 있어서의 그것에 비해 훨씬 심각해질 것이다. 정보통신에의 접근에서부터 배제된다는 것은 사회적 참여 그 자체로부터 배제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도정보사회에 있어서의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변화된 정보통신환경에 걸맞게 보편적 서비스의 내용이 전면적으로 재정립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기존의 '보편적 서비스'는 전화기라는 단말기기와 공중전화망이라는 통신회선을 전제로, 기본적 음성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서 주로 가격보조라는 경제정책적 수단을 이용하여 지역·소득에 따른 격차를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 다가오는 고도정보사회에서 모든 국민이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싼 비용으로 쉽게 정보통신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첫째, 전화기 이외의 다양한 단말기기 둘째, 기본적 음성서비스뿐 아니라 다양한 디지털 정보통신서비스 셋째, 정보통신기기 및 서비스의 가격보조라는 경제정책적 수단뿐 아니라 정보통신기기 및 서비스의 '보편적 설계'라는 기술정책적 수단 넷째, 지역·소득에 따른 격차뿐 아니라, 이용능력에 따른 접근기회의 격차 등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즉, '확장된 보편적 서비스'(Extended Universal Service)는 기본적으로 '보편적 접근'(Universal Access)의 보장을 그 목표으로 하며, 지역·소득·이용능력에 따른 접근기회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기기 및 서비스의 가격보조제도와 '보편적 설계'를 그 수단으로 한다. 이 중에서 '보편적 설계'는 신체적·정신적 능력이나 특성과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정보통신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기기와 서비스를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바로 이 점에서 보편적 서비스 이념의 확장은 '정보통신의 복지화'로서의 의미를 갖게 된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사회복지의 주된 수혜대상 중의 하나인 장애인들이야말로 신체적·정신적 능력상의 차이로 인해 정보통신에의 접근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가장 큰 집단이며, 따라서 '보편적 설계'의 가장 직접적인 수혜자 역시 장애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편적 설계'가 장애인만을 위한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장애인조차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된 기기나 서비스라면, 고령자·어린이·일시적 부상자는 물론 '정보통신장애자'(소위 '컴맹')까지도 포함하는 모든 국민이 어떤 열악한 상황조건에서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여전히 '보편적 서비스'(Universal Service) 이념의 기본적 취지를 유지·발전시킨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확장된 보편적 서비스' 내지 '복지정보통신'은 어떠한 현실적·경제합리적 근거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확장된 보편적 서비스' 내지 '복지정보통신'은 정보통신산업 자체의 '네트워크 외부효과'와 이에 의거한 통신망의 효율성 제고라는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국민이 빠짐없이 정보통신망에 접근하여 누구나 전면적으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민경제 전체의 자원활용도를 높이고 사회적 통합을 가능케 한다는 보다 폭넓은 의미에서의 사회경제적 근거를 갖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